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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스러지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별세
13일 오후 5시20분… 향년 84세
세계 6위 철강산업 우뚝…불 지펴
경제와 정치 넘나든 ‘철의 사나이’ 
더부천 기사입력 2011-12-13 17:27 l 강영백 기자 storm@thebucheon.com 조회 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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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포항제철)을 창립,‘철(鐵)의 사나이’, ‘철강왕’으로 불리며 중절모가 인상적이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5시20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최근 건강 악화로 상태가 위독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난달 11일 ‘흉막-전폐절제술’을 받았으며 이후 지난 5일 급성 폐손상이 발생해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었으나, 이날 오전부터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계호흡(인공호흡)에 의지할 정도로 매우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가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군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산업의 쌀은 철(鐵)’이라는 신념으로 ‘포철제철’을 창립해해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을 세계 6대 강대국으로 도약하도록 하며 산업 근대회에 크게 기여했던 관계로, 잠시 정계에도 발을 들여 놓으면서 4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때 유력한 대권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며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인으로서 국가경제에게 남긴 발자취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고인은 1981년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도 “정치는 외도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고 말했으나, 1990년대에는 정치 전면에 나서도록 그를 이끌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요청으로 민정당 상임고문을 맡았고 이후 3당 합당과 대선 등 정치적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92년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자당 대선 후보 권유를 받고 경선에 뛰어들려다가 당시 김영삼(YS) 후보의 견제로 뜻을 접으면서 그해 10월 대선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YS는 포항으로 달려와 그에게 선대위원장직을 유지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고인은 YS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의 위기를 맞았고, 93년 3월 일본으로 출국해 4년 넘게 해외에서 유랑했다. 고인과 YS와의 악연은 문민정부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고, 고인은 1997년 5월 귀국해 7월 포항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정치적 재기를 했다.

이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해 총재를 맡아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에 참여해 그해 연말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기여해 2000년 1월 DJ정부 두 번째 총리로 취임했으나, 그해 5월에 부동산을 명의신탁해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 무대를 완전 떠났다.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적 역경 보다는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한 공은 더욱 크다. 그래서 그를 ‘정치인 박대준’ 보다는 ‘철의 사나이, 철강왕 박태준’으로 더 많이, 더 널리 기억되고 있다.

[12월15일 추가 업데이트]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장례 ‘사회장’
17일 발인…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박 명예회장의 장례위원회는 14일 브리핑을 통해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5일장으로 해 17일 발인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인사가 사망했을 때 사회 각계 대표가 자발적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치르는 장례의식이다. 정부에서는 장례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해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오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빈소에 청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장례위원회는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고 5일장으로 17일 발인하기로 했다”며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묘역 17구역으로 확정됐다”고 15일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당초 장지를 고인이 평생을 보낸 포항으로 검토했지만 산지를 훼손해야 하는 등의 사정으로 제외됐다”며 “대전 현중원과 동작동 현충원 중 추모하시는 분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좋겠다고 판단해 동작동으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영결식은 17일 오전 7시 발인 예배를 하고 7시30분 빈소를 떠나 고인이 생전에 머물던 청운동 자택과 대치동 포스코센터를 들른 뒤 오전 9시30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한편,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마련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정ㆍ관ㆍ재계를 비롯한 국내외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철(鐵)의 사나이’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연보>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임랑리에서 박봉관(父)과 김소순(母)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음력 9월29일).

-1944년(17세): 일본육사 입교 권유 거부. 와세다대 공대로 진학 결심. 소결로공장에 노력봉사 대원으로 배치, 제철과 초면.

-1946년(19세):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2년을 마치고 중퇴.

-1948년(21세): 귀국 후 취업 좌절로 칩거하다 부산 국방경비대에 자원, 훈련중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6기 생도로 선발돼 입교. 제2중대장으로 탄도학을 강의하던 박정희 대위와 초면. 단기과정 수료후 육군 소위로 임관(7월28일), 육군 제1여단 제1연대 소장으로 부임.

-1953년(26세): 육군 중령으로 5사단 참모. 충무무공훈장, 은성화랑무공훈장, 금성화랑무공훈장 받음. 화천수력발전소 방어를 위한 중공군과의 교전 지휘(부연대장). 5사단의 지리산잔비토벌작전을 위한 부대 이동작전 수립 뒤 11월 육군대학 입교.

-1954년(27세): 금성화랑무공훈장 받음. 육군대학 수석 졸업. 육사 교무처장 부임, 진해에서 태릉으로 육사 이전 계획 수립. 12월20일 장옥자와 결혼. 후배 장교 황경노와 만남.

-1957년(30세): 장녀(진아) 출생. 10월 박정희 장군(1군단 참모장)과 재회. 25사단 참모장으로 옮김. ‘가짜 고춧가루’ 사건.

-1961년(34세): 육군본부 경력관리기구 위원으로 근무 중 5.6혁명 발발, 박정희의 배려로 거사 명단에서 빠짐. 5월16일 아침부터 계엄사령부 요원 근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 취임. 구라파통상사절단장으로 유럽 초방, 산업실태 시찰. 차녀(유아)출생. 육군 준장 진급.

-1963년(36세): 박정희의 정치 참여 요청으로 거부하고 미국 유학 준비. 3년(근아) 출생, 육군 소장으로 예편.

-1964년(37세): 박정희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 포기, 일본 특사로 훗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전역 10개월간 순방. 야스오카와 초면.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12월8일), 전무 고준식과 재회.

-1965년(38세): 육군 경리장교 황경노, 노중열, 홍건유 등 합류. 대한중석 1년 만에 흑자 체제로 전환. 박정희 요청, 일본 최고 제철소 가와사키제철소 견학, 종합제철 프로젝트에 관심. 4녀(경아) 출생. 박정희 피츠버그 방문, 코퍼스사 포이 회장과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사 교환(5월26일).

-1967년(40세): 정부와 KISA 종합제철소 건설 가협정 조인(4월6일). 종합제철 건설사업 추진위원장에 임명, 박정희 ‘제철공장 완수’ 특명.

-1968년(41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사명 확정(영문 약자표기 ‘POSCO’) 및 유네스코회관에서 창립식(4월1일)개최, 초대 사장 취임. 고준식, 황경노, 노중열, 안병화, 곽증, 장경환 등대한중석의 인재가 대거 합류. 영일만에 건설사무소(룸멜하우스) 개설. 공장 부지 조성 공사 착수. 사원주택단지 매입 및 건설 착공.

-1969년(42세): 1월 하순 KISA 차관 약속 사실상 무산 확인. 대일 청구권 자금 잔여금 포항 1기 건설자금 전용 발상(하와이 구상). ‘3선 개헌안 지지 성명’ 동조 서명 요청 거부. 연수원 개원 및 기술자 해외연수 파견. 한일 각료회담에서 종합제철 건설 지원 원칙과 대일 청구권 자금 전용 원칙 합의. 일본조사단 영일만 방문, 종합제철건설 자금조달을 위한 한일기본협약 체결(12월3일).

-1970년(43세): 박정희 설비 구매에 관한 재량권 위임(일명 ‘종이 마패’). 도쿄연락소 설치. 포항1기 건설 착공(4월1일). 열연공장, 중후판공장 착공(오스트리아 푀스터 차관).

-1971년(44세): 재단법인 제철장학회 설립. 효자제철유치원 개원. 제선공장, 제강공장 등 주요 공장 착공. 호주와의 원료 구매 협상에서 일본과 대등한 조건의 장기 공급계약 체결.

-1972년(45세): 영일만의 첫 공장으로 증후판공장 준공(7월4일), 첫 제품 출하(7월 31일). 포철 후판제품 첫 미국 수출. 본사 포항으로 이전(서울은 서울사무소로 존속).

-1973년(46세): 제1고로 첫 출선 성공(6월9일), 포항1기 설비 종합준공(7월3일), 일관.종합제철공장 완공(연산 조강 103만 톤 체제). 포항2기 건설 종합착공

-1981년(54세): 사단법인 한일경제협회 회장 피선. 포항4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50만 톤체제 확립). 포철 초대 회장 취임(사장 고준식 취임) 포항제철고등학교 개교. 제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민정당) 비례대표 당선, 국회 재무위원장 피선. 포항 4기 2차 설비 착공. 새 정부와의 긴 씨름 끝에 제2제철소 입지를 광양만으로 확정. 브라질 십자대훈장 받음. 호주 마운트ㆍ솔리탄광 합작개발 착수

-1985년(58세): 포항공과대학교 설립 착수. 고준식 사장 퇴임(사장 안병화 취임). 광양제철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동시 개료. 광양1기 설비 종합착공. 제철연수원 백암수련관 준공.미국 USS(유에스스틸)과 합작회사 설립 합의.

-1990년(63세): 민정당 대표 취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 출범, 최고위원 취임. 포철 부회장 황경노 취임. 비엔나, 테헤란 사무소 개설. 광양3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10만 톤 체제 확립).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 받음. 국내 최초 축구 전용 잔디구장 포항 준공.

-1992년(65세): 한국무역협회 ‘무역인 대상’ 수상. 베트남과 포스비나 합작 설립. 윌리코프상 수상. 모스크바대학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 칠레 베르니르드 오히기스 대십자훈장 받음. 베이징 과학기술대학 명예교수. 광양4기 설비 종합준공 및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준공’(연산 조강 2천10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회장 황경노, 사장 박득표 취임.

-1993년(66세): 해외 유랑, 도쿄 13평 아파트 생활 시작. 포철 회장 정명식, 사장 조말수 취임(황경노, 박득표, 이대공, 유상부 등 이른바 ‘TJ파’ 퇴임). 포철 세무조사. 본인, 가족, 친인척,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비자금 조사.

-1996년(69세): 총선 앞두고 여야 영입 제의 거부.

-1997년(70세): 5월초 귀국, 포항 북구 보궐선거 당선. 김영삼 정권의 경제적 실정 중점 비판, 비전 역설. DJT 연대, 자민련 총재 취임, IMF 관리체제의 국가 부도 위기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 사보 '쉿물' 폐간(통권309호). 베네수엘라 포스벤 합작계약 체결.

-2000년(73세): 자민련 총재 사퇴, 국무총리 취임. 소량의 각혈 시작. 4월 총선의 여권과 자민련 패배. 5월19일 총리 사임. 신세기통신 지분 SK에 매각. 포항테크노파크 이사회 창립. 포철 민영화 완료(10월4일.)

-2001년(74세): 뉴욕 코넬대학병원에서 폐밑 물혹 제거수술. 뉴욕에서 9.11테러 현장 목격. 포철 명예회장 재위촉

-2003년(76세): ‘중국 발전 연구 기금회’ 고문으로 초빙돼 베이징 댜오위타이 ‘2003년 중국 발전 고위층 논단’에 참석, 중국경제에 대한 연설.

-2005년(78세): 포스코 청암재단 확장 설립.

-2011년 12월2일: 포스텍(총장 김용민) 개교 25주년 기념식, 포스텍 노벨동산에 청암 박태준 설립 이사장 조각상 제막식. 조각상은 우웨이산 중국 조소원 원장이 제작했으며, 평소 즐겨 입던 코트와 중절모를 착용한 모습이며, 조각상 받침대에는 ‘강철거인 교육위인 박태준 박사(鋼鐵巨人, 敎育偉人 朴泰俊 博士)’라는 문구를 새김.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별세.


△포스코는 홈페이지에 팝업창을 띄워 박태준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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