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전(前) 주한미군의 폭로에 이어, 24일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 옛 미군기지 ‘캠프 머서’(미 44공병단)에서도 “온갖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당시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퇴역 군인의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부천지역사회가 인근지역 환경오염 등에 따른 우려와 함께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천속의 미국’이라는 47년 전 타임머신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화학물질 수백 갤런 매립” 증언

오정동 옛 미군기지 ‘캠프 머서’에 화학물질 매립이 됐다는 사실은 당시 미 44공병대대 547중대원으로 1963년 7월부터 1964년 4월까지 근무한 레이 보우스(Ray Bows, 당시 계급 일병) 씨가 지난 2004년 5월24일에 6.25 참전용사의 아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코리안 워 프로젝트(Korean War Project)’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캠프 머서에 주한미군 화학물질 저장소(USACDKㆍUS Army Chemical Depot Korea)가 있었고, 1964년 3월 또는 4월께 이 화학물질 저장소를 경북 칠곡군 왜관의 캠프 캐럴로 옮기면서 캠프 머서에서 불도저로 구덩이를 파고 고무로 만든 옷과 가스 마스크 및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화학물질 쓰레기를 수백 갤런(1갤런은 3.8L) 버렸다”고 밝힌 사실이 24일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오정동 옛 미군기지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보우스 씨는 구체적인 매립 장소에 대해 “캠프 기지 정문에서 오른쪽 두번째 창고 뒤에 있는 언덕”이라고 지목했으나, 어떤 화학물질이었는지, 이후 어떻게 관리됐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캠프 머서에 있는 주한미군 화학물질 저장소는 이곳(부천)이 비무장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1964년 3~4월경 ‘캠프 캐럴’(경북 칠곡군 왜관읍)로 이전했다”며 “1978년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캠프 머서는 1964년 당시와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 머서’… 오정동서 38년간 주둔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 117번지 일원 33만1천803㎡ 규모에 ‘캠프 머서’라는 이름으로 미 44공병대대가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7월부터이고, 1992년 9월30일 파주 봉일천 일대로 이전할 때까지 38년간 주둔했으며, 1993년 7월 우리 측에 반환돼 현재는 육군 수도군단 1121공병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부대 내에는 건물 61개 동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천시, TF팀 구성 신속한 대책 나서

부천시는 오정동 옛 미군기지의 화학물질 매립 관련 언론보도가 나온 어제(24일) 오후 4시께 보도자료를 통해 ““군부대의 실태 파악 후 매립 여부 확인 및 토양오염 조사 과정에 공동 참여 의견을 군관계자에게 전달했고, 오염 여부가 공식 확인될 경우 중앙부처(환경부, 국방부 등)와 유기적인 관계로 토양오염 원상복구에 총력을 기울이로 했다”고 첫 공식 입장을 냈다.

시는 이날 김홍배 도시환경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부천시 오정동 미군기지 화학물질 매립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관련기관과 공동으로 화학물질 조사 추진, 오염 여부 조사, 주민 불안감 해소를 위한 설명회 개최 등을 실시키로 하는 등 신속한 대책에 나섰다.

시는 이어, 25일 오전 9시 김만수 시장 주재로 정용배 부시장, 김홍배 도시환경국장, 고영태 물재생과장(옛 하수과장), 이봉호 환경보전과장, 송재용 참여소통과장, 박한권 홍보기획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관계기관 공동대응 방안 및 우선 조치할 내용 등을 논의하고 △국방부, 경기도 등 관련 기관 공동 대응 추진 △인근지역 오염여부 조사 실시 △인근지역 주민 대상 주민 설명회 개최 등 실시키로 했다.

김만수 시장은 이날 오전 11시20분에는 오정동 옛 미군기지 현장을 방문해 김상희 국회의원(민주당 소사구 지역위원장)과 1121부대장, 국방부 환경과장, 수도군단 정훈참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향후 화학물질 매립 현장 공동 조사 등을 협의하는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어, 김만수 시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시청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근지역 수질오염 검사와 관련해 “군부대 내부는 국방부 주관 하에 오염 여부를 검사하고, 군부대 주변 인근 지하수 오염 여부는 현재 시가 관리하고 있는 지하수 관리공 37곳에 대해 수질오염 검사를 조속히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또 화학물질 매립 여부 확인과 관련해서는 “국방부 주관하에 경기도, 부천시 등 관련기관과 부천지역 민간환경단체가 참여해 매립 여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는 이날 오후 2시에는 오정동 주민센터에서 오정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부천시 대처 방안 등을 설명하는 주민설명회를 갖고 주민 불안감 해소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주관으로 미군부대가 주둔한 지역인 부천, 의정부, 동부천 등 3개시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주변 지하수에 다이옥신 등 오염도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경기도 차원보다는 국가적 차원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중앙부처(국무총리실)에서의 대책 마련이 나온 이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회의 개최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만수 시장은 이번 오정동 옛 미군기지의 화학물질 매립과 관련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26일부터 29일까지 방문할 예정이었던 해외 자매도시인 러시아 하바로프스키시 건립 153주년 기념행사 참석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직접 챙기기로 했다.

◇부천지역사회 반응… “민관군 합동 철저한 진상조사” 촉구

부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 부천시위원회, 부천민중연대 등은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내고 “민ㆍ관ㆍ군 합동 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여와 개혁실천 부천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24일 오후 성명을 내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전문가, 주민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해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부천시에서도 빠르게 민관 합동 진상조사단을 꾸려 오정동 미군기지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정밀 환경조사와 주민 건강조사를 진행해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부천시위원회도 같은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부천시와 정부는 오정동 미군기지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당장 실시하고, 주한미군은 전국의 모든 미군 기지에 대한 전수조사에 응하고 매립에 관련된 자료를 전면 공개하고 오염된 땅 원상복구할 것과 미국은 고엽제 매립 범죄행위를 자행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한민국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부천지역 4개 위원회도 25일 오후 성명을 내고 “경북 칠곡에 준하는 한미협조와 민관군 공동조사단 구성을 통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부천지역의 또다른 반환 미군기지와 주변지역에 대한 환경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환경정보 공유 및 접근 절차에 관한 부속서 체결 이전인, 2003년 이전에 반환받은 10개의 미군기지를 포함한 47개의 모든 반환 미군기지에 대한 철저한 환경조사 및 4천억이 넘어갈 것이라는 반환기지 환경오염 복구비용에 대한 미군측의 책임을 분명히 묻고, 향후 이러한 환경오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불평등한 SOFA 환경규정의 즉각적인 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부천민중연대도 이날 오후 성명서를 발표하고 “민간단체, 전문가 등을 포함해 조사단을 구성하고 과학적이고 빈틈없는 진상조사, 인근 주민들에 대한 건강조사를 진행하고, 불평등한 한미 SOFA 협정을 즉각 개정하고, 사실 확인시 주한미군은 완전한 원상복구를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와 개혁실천 부천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이날 오후 3시 부천시민학습원에서 오정동 옛 미군기지 고엽제 등 맹독성 물질 불법 매립 대책회의를 갖고 “신속한 진상규명과 원상회복을 위해 민간전문가와 시민대표가 포함된 민ㆍ관ㆍ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빠른 시일 내에 현장을 방문하고 실질적인 조사가 착수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5월30일 오정동 주민을 중심으로 범시민적 대책기구 구성을 위한 모임을 갖기로 했다.

또 26일 오전 10시 오정동 옛 미군기지 정문에 시민단체 관계자, 지역주민들이 모여 현장방문을 요청하기로 했다.

◇軍, 현장답사… “화학물질 매립 밝히는데 한달 정도 소요”

국방부와 육군, 환경부 등은 25일 오전 10시부터 오정동 옛 미군기지 ‘캠프 머서’를 방문, 현장 답사를 실시했다.

이날 현장 답사에는 국방부 환경팀 소속 2명과 육군 환경과 2명, 환경부 토양지하수과 2명, 한국농어촌공사 전문가 등이 참여했으며, 김만수 부천시장과 김상희 국회의원(민주당 소사구 지역위원장), 부천시 오정동 미군기지 화학물질 매립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팀장 김홍배 도시환경국장, 박명호 오정구청장 등 시관계자도 참석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정동 옛 미군기지 ‘캠프 머서’ 현장 방문을 통해 정확한 화학물질 매립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부대의 부지 이력조사를 실시한 뒤 미군과의 협조하에 매립 장소를 정확히 추정해 조사를 실시하기로 하는 현편, 환경오염 조사는 미군을 비롯해 국방부, 환경부, 부천시가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현장 방문해 참석한 김상희 의원은 “앞으로 구체적인 (화학물질) 매립 사실이 밝혀지는데는 최소 한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