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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투신해 아파트 현관 앞에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으며, 이 아파트 17∼18층 계단에서 노회찬 의원의 외투가 발견됐고, 외투 안에서 신분증이 든 지갑과 정의당 명함과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회찬 의원은 어제(22일) 미국 출장에서 귀국했으며,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4천600여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과 관련해서 특검팀으로부터 수사선상에 올라있지만 소환 조사를 받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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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걸어온 길
갑작스런 비보로 정치권을 큰 충격에 빠뜨린 ‘비운의 진보 정치인’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3선)는 1956년 부산 출신으로 경기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시절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 1982년에는 시위 주도와 불온문서 배포 등 혐의로 수배생활을 했다.
1980년대 후반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진보정당의 길에 본격 뛰어들어 1997년 국민승리21 기획위원장과 정책기획홍보위원장을 지냈다.
민주노동당 부대표(2000~2002년)를 지낸 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8년 3월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았고 같은해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으나 홍정욱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에게 3%포인트 차로 패한 뒤 진보신당 대표(2009년 3월~2010년 10월)에 이어, 이듬해 진보정당건설 추진위원장을 맡았고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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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재도전해 과반의 득표율로 당선됐으나 ‘삼성 X파일’(떡값 검사 리스트)에 오른 전ㆍ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새진보정당추진회의 공동대(2012년 12월~ 2013년 7월)를 맡아 정의당을 창당했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 서울 동작을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으나 929표 차로 나경원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성산에서 출마해 3선 의원에 당선돼 정의당 원내대표로 활동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