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作 ‘백호도(白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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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랑이 그림의 원형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현무(玄武), 주작(朱雀), 청룡(靑龍), 백호(白虎) 즉, 사신도(四神圖)에 나오는 백호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신도 속 백호의 모습은 실제 백호의 모습과는 달리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백호라고 불러도 사신도 속의 모습은 현실 속에서 보는 실제 호랑이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백호는 실제로 털이 흰 호랑이를 뜻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동양권에서는 신화나 설화에 나오는 영험한 상상속의 동물을 의미합니다.
민간 신앙에서는 호랑이에 바탕을 둔 상상의 동물이었는데, 청룡(靑龍), 주작(朱雀), 현무(玄武)와 함께 사신(四神)을 이루어 신격화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사신 가운데 백호는 유일하게 현실세계의 동물입니다. 지금은 동물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사신이 태어난 고대는 물론 적어도 15세기까지는 좀처럼 현실의 동물로 여기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한 이유가 사신도인 고구려 고분 벽화 속 백호는 긴 뱀의 형상으로 하늘을 나는 용처럼 그렸졌습니다.
백호를 용처럼 생각한 상상력은 용이 하늘과 바다를 거침없이 다니고, 비나 구름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백호를 용처럼 그린 현상은 고려시대에까지 이어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실제 모습의 백호처럼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백호는 우리 민화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백호는 도를 깨우친 호랑이로 가장 신성한 흰털을 지닌 호랑입니다. 죽음을 관장하며 죽은 자와 산 자를 잊는 역할을 합니다.
오행의 금(金)을 상징하는 백호는 쇠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강한 무력의 상징이며, 인간으로 둔갑하는 것 외에 특별한 신통력은 없으나 그 강력한 힘은 신통력을 지닌 다른 존재와 맞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대단하며, 주로 영계의 존재(귀신)를 물리치는 존재로 많이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호 방향은 우측이며, 지도상으론 서방의 수호자이며, 계절로는 추수하고 정리해야 하는 가을이며, 색으로는 흰색이고, 오상에서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의(義)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집을 짓거나 묘를 쓸 때 좋은 자리를 잡아주는 풍수가 유행했는데 여기에 ‘배산임수’니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즉 왼쪽은 청룡, 오른쪽은 백호가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벽사의 개념으로 호랑이를 정의했습니다.
호랑이는 영험한 짐승이라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불의 재앙, 물의 재앙, 바람의 재앙 같은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인 질병과 전쟁,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백호는 우리 민족의 우주관이 담겨있는 고구려의 ‘사신도’에서부터 출발하여 조선 말기의 일반 백성의 인간적인 욕망까지 시대를 넘어서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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