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상에 인연 남기고… 명수필가 피천득 선생 별세
더부천 관리자 2007-05-27 8156
*** 한국 수필문학의 거목 피천득 선생이 국민들에게 '인연'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그린 명수필 '인연'의 작가,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가 5월25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지난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46년부터 30여 년 동안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표작 '인연'과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는 등 한국 수필문학의 산 증인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30여년 전에는 더 나은 작품을 낼 수 없다면 더 이상 산문을 쓰지 않겠다며 절필 선언을 했다. 호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뜻하는 호 '금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계절 5월에 세상을 떠난 노작가의 장례는 고인의 생일이기도 한 5월29일 천주교 미사로 치뤄진다.***

■수필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는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인연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꼬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 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꼬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가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꼬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꼬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36^예요" 하였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꼬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꼬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꼬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원 영문과 3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꼬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꼬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

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꼬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는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을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 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꼬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꼬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꼬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꼬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꼬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꼬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꼬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꼬와 나는 절을 몇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신춘

1월은 기온으로 보면 확실히 겨울의 한 고비다. 쉘리의 '겨울이 오면^5,5,5^'이라는 구절을 바꾸어 '겨울이 짙었으니 봄이 그리 멀겠는가?' 이런 말을 해보았더니, 신문사에서는 벌써 '신춘에 붙여서'라는 글제를 보내왔다.

1월이 되면 새봄은 온 것이다. 자정이 넘으면 날이 캄캄해도 새벽이 된 거와 같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1월은 봄이다. 따뜻한 4월, 5월을 어떻게 하느냐고? 봄은 다섯 달이라도 좋다.

우리나라의 봄은 짧은 편이지만, 1월부터 5월까지를 봄이라고 불러도 좋다. 봄은 새롭다. 아침같이 새롭다. 새해에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

얼마 전에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문득 들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는 신선한 웃음소리는 나에게 갑자기 봄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이 이름 모를 여자에게 감사의 뜻을 갖는다.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한테서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내가 여자라면 경제가 허락하는 한 내가 아는 남학생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겠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명랑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으로 태어난다면, 라디오 아나운서가 되어 여러 청취자들에게 언제나 봄을 느끼게 하겠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이 성격 파산자들이라 하여, 또는 신문 3 면에는 무서운 사건들이 실린다 하여 나는 너무 상심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대부분이 건전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소설감이 되고 기사 거리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이른 아침 정동 거리에는 뺨이 붉은 어린아이들과 하얀 칼라를 한 여학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사람이 귀증하다는 것을 배우러 간다.

봄이 되면 고목에도 찬란한 꽃이 핀다. '슬픈 일을 많이 보고, 큰 고생하여도' 나는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센티멘탈하지 않다.

바이올린 소리보다 피아노 소리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병든 장미보다는 싱싱한 야생 백합을, 신비스러운 모나리자보다는 맨발로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시골 처녀를 대견하게 여기게 되었다.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는 황혼이 되어 가고 있었다'라는 소설 배경을 좋아하던 나는, '그들은 이른 아침, 바이올렛빛 또는 분홍빛 새벽 속에서 만났다. 여기에서는 일찍이 그렇게 일찍이 일어나야 되었기 때문이었다'라는 시간적 배경을 좋아하게 되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담배를 끊어보겠다는 둥, 아내에게 좀더 친절하게 하여 주겠다는 둥 별별 실행하기 어려운 결심을 곧잘 한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나 늘 웃는 낯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조춘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요,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볕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다.

이제는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은'이 초록빛 '숫 케이스'를 마차에 싣고 넓어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

어제 나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오는 것을 느꼈다. 충분한 보상이다.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웅얼거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겨울이 다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아무리 포근하고 보드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십년이나 입어 정이 든 내 외투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말이 '조춘'이라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춘궁'이다. '빈한'이란 말은 냉랭한 겨울 날씨같이 오히려 좋은 데가 있다. 나는 영어로 '빈한'이 아니요, '한빈'이라는 말을 안다.

그러나 '춘궁'이란 말은 없는 듯하다.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리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두었던 화폭을 펴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시키려는 이때.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
시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여성의 미

'나의 여인의 눈은 태양과 같지 않다. 산호는 그녀의 입술보다 더 붉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정직한 말이다.

하기야 뺨이 눈같이 희다고 그리 아름다운 것도 아니요, 장미 같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애인의 입술이 산호같이 붉기만 하여도 그리 좋을 것이 없고, 그의 눈이 태양같이 눈부시게 비친다면 큰 일이다.

여성들이 얼굴을 위하여 바치는 돈과 시간과 정성은 민망할 정도로 막대하다. 칠하고 바르고 문지르고 매일 화장을 한다. 하기야 돋보이겠다는 이 수단은 죄없는 허위다.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젊은 얼굴이라면 순색 그대로가 좋다. 찬물로 세수를 한 젊은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늙은 얼굴이라면 남편이 코티 회사 사장이라도 어여뻐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형같이 예쁘다는 말은 사람이 아니오, 만들어 놓은 물건이란 말이다. 여성은 물건이 아니오 사람이다. 단지 얼굴이나 몸의 부분적인 생김생김만이 미가 될 수는 없다. 미스 아메리카와 같이 '인치'나 '파운드'로 미가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 솜씨,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

비너스의 조각보다는 이른 아침에 직장에 가는 영이가 더 아름답다. 종달새는 하늘을 솟아오를 때 가장 황홀하게 보인다. 그리고 종달새를 화려한 공작보다도 나는 좋아한다.

향상이 없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이, 이상에 불타지 않는 미인을 상상할 수 없다.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는 요염하고 매혹적인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평화와 행복을 약속하는 건전한 미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나라를 기울여뜨리고 자신들을 망하게 하였다.

참다운 여성의 미는 이른 봄 같은 맑고 맑은 생명력에서 오는 것이다. 시인 키이츠는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자체가 스러져 없어지는 것을 어찌하리오.

아무리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도 청춘의 정기를 잃으면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여 나는 사십이 넘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물게 본다. '원숙하다' 또는 '곱게 늙어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개념이다. 슬픈 억지다.

여성의 미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약방문은 없는가 보다. 다만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맛과 멋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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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론(志操論)― 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 /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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